2026.04.24

돌이켜보면, 지난 수년간 ‘AI를 둘러싼 경쟁’은 글로벌 프런티어 기업과 연구소들이 각자의 트랙 위에서 속도를 겨루는 형태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경쟁 구도가 조금 달라진다면 어떨까요? 영향력 있는 AI 연구소와 기업들이 경쟁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 숙련된 개발자 및 연구진과 함께 프런티어 모델을 공동으로 구축한다면, 그 결과물은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속도와 밀도를 가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상상을 비교적 구체적인 형태로 구현한 사례가 바로 ‘네모트론 연합(Nemotron Coalition)’입니다. 엔비디아는 네모트론 모델군을 개발·고도화하기 위해 글로벌 AI 기업들로 구성된 협력체를 조직했으며, 이와 동시에 네모트론 3를 오픈소스로 공개한다는 결정을 함께 발표했습니다.
이 연합에는 업계에서 이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기업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습니다. 블랙 포레스트 랩스(Black Forest Labs), 커서(Cursor), 랭체인(LangChain), 미스트랄 AI(Mistral AI), 퍼플렉시티(Perplexity), 리플렉션 AI(Reflection AI), 사르밤 AI(Sarvam AI), 씽킹 머신즈 랩(Thinking Machines Lab) 등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각자의 전문성과 자산을 기반으로 협력 구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이 단순한 기술 협력을 넘어, 일반적으로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데이터셋, 평가 시스템, 연구 인사이트, 그리고 일부 컴퓨팅 자원까지 공유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의 목표는 단일 기업이 독자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고도화된 ‘공유형 하이엔드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각 참여 주체가 더욱 전문화된 응용 모델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엔비디아가 만든 네모트론 연합은 무엇인지, 실제 역학 관계는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이 오픈 AI 생태계의 향후 방향성에 어떤 의미를 시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네모트론 3는 지난 2년간 AI 산업을 주도해온 ‘폐쇄형 연구소’ 중심 접근법과는 분명히 다른 방향성을 보여줍니다. 엔비디아는 단순히 완성된 모델을 공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모델이 구축되는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유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엔비디아 연합에 속한 다양한 참여 주체가 각자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기여할 수 있는 ‘협력의 기반’을 형성합니다.
엔비디아는 왜 이러한 ‘판’을 설계하려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비교적 명확한 비즈니스적 맥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본질은 가속 컴퓨팅 기업입니다. 더 높은 성능의 하드웨어를 설계하고 공급하는 것이 핵심 경쟁력입니다. 그러나 차세대 칩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AI 모델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학습되고 동작하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정보는 Meta나 Google와 같은 경쟁 기업들이 외부에 공유하지 않는 핵심 자산이기도 합니다. 이 지점에서 엔비디아는 하나의 선택을 합니다. 외부에 의존하기보다, 직접 프런티어 모델을 구축하고 그 과정을 통해 필요한 인사이트를 확보하는 방식입니다. 어떤 데이터 정밀도가 성능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지, 특정 아키텍처가 연산 구조에 어떤 변화를 요구하는지, 학습 과정에서 병목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와 같은 질문들에 스스로 대답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만약 엔비디아가 네모트론을 직접 구축하지 않는다면, 엔비디아는 미래 칩 설계에서 불확실성이 높은 상태에 놓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엔비디아가 오픈 모델에 투자하는 또 다른 이유는 AI 시장 전체의 성장을 전제로 하는 장기적 접근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복리 효과’를 기대하는 구조입니다. 현재 엔비디아는 하이퍼스케일러, 스타트업, 일반 기업, 그리고 정부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은 고객군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특정 플레이어의 승패보다 시장 전체의 확장이 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합니다.
특히 엔비디아는 AI의 ‘활용 단계’뿐 아니라 AI가 '만들어지는' 개발 프로세스 그 자체에서 수익을 창출합니다. 이게 바로 엔비디아가 오픈 생태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비결이기도 합니다. GTC 2026에서 브라이언 카탄자로 부사장이 언급했듯, 실제 AI 구축에 투입되는 컴퓨팅 자원 중 모델 학습이 차지하는 비중은 일부에 불과하며, 더 많은 자원이 실험, 합성 데이터 생성, 그리고 전체 구축 프로세스에 사용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엔비디아가 모델 가중치뿐 아니라 학습 레시피, 데이터셋, 절제 연구(Ablation Study), RL 롤아웃까지 함께 공개하는 전략은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경쟁력의 핵심으로 간주해 비공개로 유지하는 ‘개발 프로세스’를 개방함으로써, 오픈 생태계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동시에 자사 인프라와 도구에 대한 의존도를 자연스럽게 확대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신 네모트론 3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모델 자체의 지능’을 극대화하는 접근과는 다소 다른 방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엔비디아가 주목한 지점은, 최근 Agentic AI의 확산과 함께 부각되고 있는 ‘시스템 수준의 병목 현상’입니다.
멀티 에이전트 기반 파이프라인이 도입되면서, AI 시스템은 이전보다 훨씬 복잡한 실행 구조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문제는 컨텍스트의 급격한 팽창입니다. 에이전트 간 상호작용이 반복될수록 이전 상태, 도구 실행 결과, 중간 추론 과정이 누적되며, 전체 시퀀스 길이는 비선형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처럼 길어진 컨텍스트는 두 가지 부담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는 비용과 지연 시간(latency)의 증가입니다. 더 많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추론 속도는 자연스럽게 저하되고, 이에 따른 인프라 비용도 함께 상승합니다. 다른 하나는 시스템 안정성 문제입니다. 컨텍스트가 과도하게 길어질 경우, 에이전트가 핵심 목표에서 이탈하거나 비효율적인 경로를 반복하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멀티 에이전트 구조에서는 파이프라인의 각 단계마다 추론이 반복적으로 수행된다는 점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상대적으로 단순한 하위 작업까지도 대형 밀집 모델(Dense Model)에 의존하게 되면, 불필요하게 높은 연산 비용이 누적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생각 비용(Thinking Tax)’이 발생하는 구조입니다. 결과적으로 한쪽에서는 컨텍스트 유지 비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반복적이고 비효율적인 추론 비용이 쌓이는 이중의 압박이 형성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네모트론 3는 아키텍처 차원의 해법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단일 모델의 성능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기보다, 전체 시스템이 보다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 방향을 재정의한 것입니다.
네모트론 3를 관통하는 철학은 비교적 명확한 세 가지 축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빠른 모델이 곧 더 똑똑한 모델”이라는 관점입니다. 더 빠른 모델은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고, 더 많은 강화 학습 반복을 수행하며, 실제 운영 환경에서도 더 다양한 추론 경로를 탐색할 수 있습니다.
둘째, “와트당 토큰(tokens per watt)”의 극대화입니다. 동일한 전력 자원으로 더 많은 토큰을 생성할 수 있다면, 이는 곧 더 높은 생산성의 지능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네모트론 3는 데이터 센터 전체의 전력 효율을 극대화해서 낭비되는 에너지 없이 지능을 생산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셋째, 하드웨어 맞춤형 설계입니다. 범용성을 우선하는 기존 접근과 달리, 처음부터 블랙웰 등 특정 가속 시스템의 성능을 100% 사용할 수 있는 구성을 정하고 모델을 설계했습니다.
네모트론은 단순히 성능이 우수한 ‘프론티어 오픈 모델’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니셔티브는 하나의 프로젝트 안에서 협력하는 다양한 연구소와 기업 간의 역할 배분, 그리고 각자의 고도화된 전문성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산업 구조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프론티어급 오픈 모델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이제 개별 기업이 단독으로 감당하기에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으며, 모델 자체 또한 점점 더 전문화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데이터, 인프라, 툴체인 등 주변 생태계에 대한 의존도 역시 크게 높아졌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엔비디아는 비용과 리스크가 큰 ‘파운데이션 레이어’를 공동으로 구축하고, 파트너 기업들이 그 위에 각자의 차별화된 역량을 더하는 구조를 제안했습니다. 이 방향성은 엔비디아가 일관되게 강조해온 전략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오픈 모델과 데이터셋, 그리고 Agentic AI를 위한 도구들이 ‘개방성’, ‘전문화’, ‘주권적 배포(Sovereign Deployment)’를 중심으로 구성된다는 점입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이러한 전략이 단순한 메시지에 그치지 않고 실제 실행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Bryan Catanzaro 부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네모트론 연합은 데이터, 컴퓨팅, 전문 지식 전반에 걸쳐 파트너별 역할과 목표, 라이선스, 기여 범위가 비교적 명확하게 정의된 ‘독립 프로젝트 단위’로 운영됩니다.
그 첫 번째 프로젝트는 미스트랄 AI와의 협력을 통해 베이스 모델을 사전 학습하는 작업이었으며, 이는 네모트론-4 Base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사후 학습과 응용 단계에서는 더 많은 파트너들이 참여해, 각자의 애플리케이션 요구사항에 맞는 형태로 모델을 발전시켜 나가는 구조가 예상됩니다.
이 연합의 핵심은 엔비디아와 미스트랄이 강력한 '엔진'을 만들면, 나머지 파트너들이 각자의 전문성으로 그 성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구조입니다.
엔비디아: 설계자이자 공급주. 압도적인 컴퓨팅 자원과 인프라를 제공합니다. 브랜딩과 정치적 서사를 주도하면서 프로젝트 전체에 강력한 추진력을 불어넣습니다.
공동 제조사. 엔비디아와 손잡고 실제 플래그십 모델(베이스 모델)을 구축하는 핵심 파트너입니다.
시각 지능 담당. 이미지, 비디오 등 멀티모달 기능을 주입해서 모델의 감각을 확장합니다.
오케스트레이션 전문가. 도구 사용, 장기 추론 등 복잡한 에이전트 시스템이 매끄럽게 돌아가도록 설계합니다.Cursor: 실전 검증팀. 개발자 환경에서 모델이 실제로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평가 데이터셋과 성능 요구 사항을 정의합니다.
사용자 경험 인사이트. 대규모 서비스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모델이 실제 사용자들에게 얼마나 유용하게 쓰일지 최적화합니다.
현지화 및 다국어 전문가. 지역별 언어와 문화, 특히 음성 중심의 AI 시스템에 특화된 기여를 합니다.
미래 역량 베팅. 각각 RL 기반의 사후 학습과 데이터/연구 협업을 담당하는데, 현재는 연합의 기술적 신뢰도를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
현재 구조는 엔비디아와 미스트랄 AI가 중심축을 형성하고, 나머지 파트너들이 이를 확장하는 형태에 가깝습니다. 다만 프로젝트 단위로 운영되는 구조상, 향후 기여도와 기술적 중요도에 따라 역할과 영향력은 유연하게 재편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연합을 바라볼 때 또 하나 흥미로운 관점은, 기술적 협력뿐 아니라 ‘상징적 자산’ 역시 교환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Reflection AI나 Thinking Machines Lab와 같은 조직은, 이 연합에 참여함으로써 초기 단계에서부터 높은 가시성과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일종의 ‘빌려온 위상(Borrowed Prestige)’과도 유사한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엔비디아는 이들 조직이 보유한 연구 인력, 배경, 그리고 상징성을 통해 연합 전체의 신뢰도와 기대치를 강화하는 효과를 얻습니다. 예컨대 Mira Murati와 같은 인물의 상징성은, 프로젝트의 실제 진행 단계와는 별개로 이 연합이 ‘오픈 프론티어 AI의 중심축’으로 인식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네모트론 연합은 단순한 기술 협력 사례를 넘어, AI 산업의 구조적 변화에 대해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특히 엔비디아가 설계한 이 구조는 일종의 ‘자유의 역설’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개방성을 확대하면서도 동시에 영향력을 유지하는, 새로운 균형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이 연합은 최근 AI 산업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프론티어 모델 개발의 모듈화’를 반영합니다. 하나의 조직이 모든 단계를 통제하기보다, 학습, 평가, 프레임워크 개발, 도메인 데이터 구축, 멀티모달 처리, 현지화 등 각 기능이 전문화된 주체들에 의해 분산 수행되는 구조입니다.
둘째, 엔비디아는 이 모듈화된 스택 위에서 생태계 전체의 조정자이자 기반 제공자인 ‘오케스트레이터’ 역할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OpenAI, Anthropic, Google, Meta와 같은 기존 프런티어 기업들이 아닌, 엔비디아 자신을 중심으로 한 연합형 네트워크를 공개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네모트론 연합은 ‘오픈AI’를 완전히 분산된 구조라기보다, 일정 수준 관리된 산업 생태계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여 기업들은 각자의 브랜드와 전문성을 유지하며 개방성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컴퓨팅 자원, 기술 로드맵, 배포 인프라 측면에서 엔비디아의 시스템과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엔비디아는 통제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개방성의 이점을 취하고 있습니다.
네모트론은 트랜지스터 수준의 하드웨어부터 학습에 사용되는 토큰 단위의 데이터까지, AI 가치 사슬 전반을 포괄하는 접근입니다. 이는 엔비디아가 단일 제품이 아니라 ‘수직적으로 통합된 생태계’에 전략적 초점을 두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네모트론 연합'은 전략적으로 강력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네모트론 제품 자체가 경이로운 단계는 아닙니다. 네모트론-4 Base가 개발자 생태계에서 ‘오픈 파운데이션 모델’로서 충분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기존의 폐쇄형 연구소 모델들과 실질적인 경쟁 구도를 형성할 수 있을지는 후 진전 과정에서 확인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단계에 도달할 경우, 네모트론 연합의 전략적 의미는 한층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Writer: Turing Post - Ksenia Se & Ben Eum
Edit: Met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