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무 현장에 AI가 빠르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생성형 AI를 개인 업무에 활용하는 단계를 넘어 업무별 AI 에이전트를 구축하고, 기업 데이터를 연결하고, 실제 업무의 일부를 AI에 맡기려는 시도도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기업이 비슷한 문제에 부딪힙니다. AI가 조직의 역량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개별 직원의 업무 보조 도구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회사의 어디에 AI를 더 도입할 것인가’를 넘어, AI 활용의 병목은 어디에 있는지, AI가 충분히 강력해졌을 때도 우리 조직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일해야 하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AI의 속도와 조직의 속도가 달라지고 있다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는 오랜 기간 책임과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업무를 세분화해 담당자를 정하고, 관계 부서와 조율하고, 여러 단계의 검토와 승인을 거치는 방식은 복잡한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문제는 AI가 업무의 실행 속도를 크게 바꾸기 시작했다는 데 있습니다.
AI가 몇 분 안에 데이터를 분석하고 초안을 만들더라도, 그 결과를 사람이 검토하고 다른 부서에 전달하고 다시 승인을 받는 과정이 이전과 동일하다면 전체 업무의 속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 경우 AI는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기존 업무 방식을 조금 더 빠르게 자동화하는 도구에 머무르게 됩니다.
따라서 AX에서는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만큼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AI가 만든 결과를 누가 검증할 것인지, 어느 범위까지 스스로 실행하도록 허용할 것인지, 어떤 상황에서 사람이 개입할 것인지입니다.
AI의 실행 능력이 커질수록 업무 프로세스와 의사결정권도 함께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AI의 속도를 조직의 속도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기존 프로세스의 병목을 더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기업은 ‘느린 지식’과 ‘빠른 무지’ 사이에 갇힐 수 있다
문제는 프로세스만이 아닙니다. AI는 기업이 오랫동안 중요하게 평가하고 축적해 온 역량의 의미도 바꾸고 있습니다.
오랜 업력에서 나온 경험과 전문성, 정교한 프로세스와 촘촘한 조직 체계는 기업이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자산입니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가 극단적으로 빨라지면 이 자산들이 동시에 ‘왜 지금 움직여서는 안 되는가’를 설명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경험은 과거의 실패를 기억하고, 프로세스는 위험을 줄이며, 조직은 한 부서의 결정이 다른 부서에 미칠 영향을 먼저 따집니다. 각각은 합리적이지만, 모든 판단이 위험을 피하는 방향으로 모이면 새로운 시도는 시작하기 어려워집니다.
반대편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구성원은 빠르게 만들고 실험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행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 복잡한 비즈니스 맥락을 이해하고 중요한 판단까지 잘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기업은 결국 ‘느린 지식(slow knowledge)’과 ‘빠른 무지(fast ignorance)’ 사이의 긴장을 관리해야 합니다. 이것은 특정 세대나 직급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 변화로 기존 역량의 가치와 활용 방식이 달라질 때 조직이 겪는 구조적 문제에 가깝습니다.
기업이 길러온 역량과 AI 시대에 필요한 역량은 같은가
여기에서 불편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기업이 지금까지 가장 잘 길러온 역량과 AI 시대에 새롭게 중요해지는 역량은 얼마나 일치하는가.
기존 조직에서 높이 평가받아 온 역량은 비교적 분명했습니다. 이해관계가 다른 부서를 설득해 합의를 만들고, 리스크를 미리 짚어내고, 여러 검토 단계를 무리 없이 통과시키는 능력입니다. 한 번의 결정이 큰 비용을 좌우하고 되돌리기 어려웠던 환경에서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이었습니다.
그러나 AI를 활용한 업무에서는 다른 방식도 중요해집니다. 정답을 미리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작게 만들어 보고, 틀린 결과를 빠르게 확인해 수정하고, 필요하다면 직무와 부서의 경계를 넘어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AI로 많은 업무에서 실험과 실행의 비용이 낮아지면서, 검토와 승인에 소요되는 시간의 상대적 비용은 커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기존의 평가와 보상 체계가 이러한 행동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작은 실험을 반복하며 얻은 학습은 최종 성과만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반면, 실패한 시도는 리스크로 인식되기 쉽습니다. 구성원 개인이 변화를 거부해서라기보다, 조직이 보상하는 행동의 기준이 기술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AX가 기존의 경험과 전문성을 버리는 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어떤 고객을 우선해야 하는지, 어떤 위험은 감수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판단은 여전히 오랜 경험에서 나옵니다. 필요한 것은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경험의 깊이와 AI가 제공하는 실행 속도가 하나의 업무 구조 안에서 만나도록 설계하는 것입니다.
가드레일 안의 자율성’을 설계해야 한다
기업에서 보안과 컴플라이언스, 품질, 책임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AI가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실제 업무를 수행할수록 잘못된 결과가 미치는 영향도 커집니다. 반대로 모든 AI 활용을 중앙 조직이 검토하고 승인하도록 하면 현업에서의 확산 속도를 높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AX 조직의 핵심은 통제와 자율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 수준에 따라 둘의 경계를 다시 설정하는 것입니다.
반복적이고 위험도가 낮은 업무에서는 현업과 AI가 보다 자율적으로 실행하게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의사결정이나 규제·보안과 관련된 업무에서는 사람의 검토와 승인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중앙 조직의 역할도 달라집니다. 모든 AI 활용을 직접 통제하기보다 공통 플랫폼과 데이터, 보안 기준, 평가 체계라는 가드레일을 제공하고, 현업은 그 안에서 빠르게 AI를 활용하고 실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조직의 경계 역시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AI는 기존 직무 구분에 맞춰 일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에이전트가 정보를 찾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문서를 작성하고, 후속 업무까지 연결할 수 있다면 업무를 기능별로 잘게 나누어 부서에서 부서로 전달하던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결국 AI 시대의 희소한 자원은 좋은 인재나 좋은 AI 하나만이 아닙니다. 사람이 가진 경험과 판단, AI가 가진 실행 능력을 서로 증폭시킬 수 있도록 조직을 설계하는 능력이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Writer: Turing Post – Ksenia Se & Ben Eum
Edit: Metanet
